

이대로 항저우를 떠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공항으로 가기 전에 2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저녁도 든든히 먹었으니, 소화도 시킬 겸 조금 걸었으면 했다.
[항정우 맛집, 녹차식당]
저녁을 먹었 녹차(綠茶)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항저우에서 천년이나 된 거리가 있다고 해서 가보 기로 했다.
청하방(清河坊, 청허팡)
중국의 고대, 송나라 송고종의 궁전인 덕수궁 유적지가 있던 곳이다.
송나라 때 청하군왕(清河郡王)으로 임명된 장준(张俊)의 거주지가 태평항(太平巷)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 이후부터 이 지역을 청하방(청하 동네, 청하 마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송나라 때 청하방은 상점과 식당, 찻집이 많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유명했다.
송나라 이후 원, 명, 청을 거쳐 지금의 중국(중화민국)으로 이어지는 동안에도 항저우의 상업지역으로 남아 항저우 최대의 번화가 중 한 곳이 되었다.


청하방은 입구에서부터 오래 전 중국의 모습을 연상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건물들이 모두 오래된 모습이었는데, 거기에 거리 입구에 청하방(清河坊) 한자가 큼직하게 적혀 있어서 더 고풍스러웠다.
고풍스러웠다는 표현이 어쩌면 나라서 그렇게 느껴졌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한글이 아니라 한자가 적힌 모습을 보면 조금 고풍스러워보이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그럴텐데,
중국사람들이 보기에 한자는 지금도 사용 중인 단순한 글씨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에게는 입구에서부터 청하방은 오래된 거리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청하방이 항저우에서도 유명한 번화가이면서 맛집과 상점이 많이 몰린 곳이라
주말을 맞아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모여 있는 모습이었다.
서호 주변으로도 사람들이 엄청 많았는데, 청하방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정말 중국은 어딜 가나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래도 성큼 들어 선 청하방 거리는 나를 놀래키기에 충분했다.
우리네 한옥마을 정도를 상상했었는데 실제로 청하방에 와서 보니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색다른 매력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건물은 모두 2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촘촘히 들어선 상가들이 길고 곧게 늘어서 있어 이색적이면서도 몽환적이었다.
상가에서 흩어져 나오는 조명들이 새까만 하늘과 대조를 이루면서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방문해볼 만한 재미가 있는 곳 같았다.


천천히 거리를 걸으며 둘러본 상가는
이 곳이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내부는 화려한 상가가 많았지만 외관은 오래 전 건축과 상가, 주택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이 많았다.
이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 천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네 한옥마을은 대부분이 여행객들이 많은데
항저우의 청하방 거리는 현지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서호 주변과 함께 둘러보기 좋아서 그런지 가족 단위, 친구나 연인 단위의 방문객이 많았다.
아이들 손을 잡고 청하방 걷는 가족의 모습이 정말 많았는데
순진하게 뛰어 놀고 얘기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래된 건물들과도 참 잘 어울렸다.
늦은 시간 때문인지, 아니면 장사를 하지 않는 것인지, 문이 닫히고 불이 꺼진 상가도 더러 있었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많아 북적이는 모습 때문에 불꺼진 상가도 활기가 넘치는 것 같은 청하방이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청나라 의복을 입은 옛 청나라 사람 형상을 한 조형물도 있었다.
조형물의 손 부분을 사람들이 많이 만지고 갔는지 반들반들 했다.
이런 조형물 하나 때문에 거리가 더 고풍스러웠던 것 같다.

거리 한 가운데에는 복스러운 동상도 놓여 있었다.
어디에서 많이 뵈었던 분 같기도 한 친숙한 얼굴과 표정으로 관광객을 맞아주고 있었다.
이런 동상 앞은 언제나 어린이들이 기념촬영을 하느라 바쁘다.
이런 모습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똑같다.


청하방 거리는 1.5km의 직선 거리다.
그리 길지 않은 거리로 30여 분이면 충분히 걸어서 지나갈 수 있다.
그런데 좌우로 상가들이 많이 몰려 있어 하나하나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게 되는 곳이었다.
먹거리를 판매하는 상가도 있었지만 장난감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가도 많아서
가만히 서서 구경하고 있으면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


찰흙으로 사람 얼굴을 빚어주는 장인의 모습
아무렇게나 손으로 빚는 것 같았는데 보고 있으니 금방 사람의 얼굴을 뚝딱 만들어 내는 장인이셨다.
나는 찰흙 공예를 보면서 진시황의 병마용이 생각났다.


나무로 만든 장난감 총도 볼 수 있었는데,
남자라면 아이든 어른이든, 이 상가에 모두 한 번씩은 들렀다 가는 모습이었다.
나도 이 가게 앞에서 꽤나 오래 서서 장난감 총을 구경했는데 그 만듦새가 나쁘지 않았다.
나무로 만든 총알도 발사가 되는 모습을 시연도 해주면서 고객들에게 제품을 홍보하고 구매를 유도하고 있었다.
나도 하마터면 하나 장만할 뻔도 했는데
유럽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괜한 오해를 살까봐 억지로 꾸역꾸역 충동적인 구매를 참아야만 했다.


체험형 상가도 있었다.
귀신의 집인지, 아니면 작은 테마파크인지 모르겠지만, 줄을 서서 아이들 손을 잡고 부모들이 같이 입장하는 모습이었다.
입구에서만 보면 서유기를 체엄하는 테마파크 같아 보였는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직접 해보지 못 했다.

검정 상자 안에 경극을 보는 것일까?
꼬마 아이들이 엄마 무릎에 앉아 상자 않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상자 위에 있는 그림을 보니, 오래 전부터 중국에서는 이런 상자 안에서 드라마도 보고 영화도 보고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내가 살던 동네에도 인형극이나 동물 모형을 큰 상자 안에 두고 들여다 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저 작은 구멍으로 그 어떤 세상 보다도 넓고 큰 세상을 들여다 봤었다.


청하방 거리를 걷는데, 한쪽 병에 엄청 큰 벽과 그 벽을 가득 채운 엄청 큰 한자가 보였다.
한자를 찾아보니, 호경여당국약호(胡慶餘堂國藥號)라는 글씨였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찾아보니,
중국 전통 약방인 ‘호경여당’이라고 하는 약방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호경여당은 1874년 청나라 상인 호설암(胡雪巖)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베이징의 동인당(同仁堂)과 함께 중국 남북을 대표하는 전통 약방으로 불리게 되었단다.
지금은 ‘호경여당’ 건물이 중국 전통의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사진을 찍은 곳 왼편으로 ‘호경여당’이 보였는데, 나는 시간이 촉박해서 내부로 들어가 보지 못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사진도 찍고 중국의 오래된 약방도 구경하고 박물관이 주는 느낌도 느껴 봤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웠다.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가며 청하방 거리를 유랑했다.
옥으로 만든 빗과 다양한 부채를 판매하는 상가도 보였다.
옥으로 만든 빗을 보니, 머리를 빗기에는 조금 무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옛날 우리 할머니가 아침마다 긴 머리를 풀어 참빗으로 머리를 빗고 머릿기름을 바른 후 은색 비녀를 살포시 꽂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나는 어릴 때 보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 모습이 많이 떠오른다.

무더운 항저우 날씨에 부채를 파는 상가에서는 하나 사서 부채를 부치며 여행을 해야 하나 싶었다.
중국 느낌이 나는 부채를 기념으로 하나 챙겨갈까 싶기도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청하방 반대편에 거의 다다라서 길 가운데 있는 관우 상을 만났다.
충의정(忠義亭)이라 이름 붙여진 작은 정자 안에 관우 상이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이었다.
중국 사람들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 중에서도 관우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관우를 모신 사당이나 종교(관제신앙, 關帝信仰) 시설을 중국 뿐만 아니라 여러 대만과 홍콩에서도 만났었다.
우리 한국에도 관우를 모신 사당과 종교가 있다고 하니,
영웅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또 다양한 신앙을 만들어 내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먹거리가 빠질 수 없다.
나는 저녁을 먹은지 오래되지 않아 배가 고프지 않았고, 또 청하방에서 따로 먹거리를 사먹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먹거리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볼거리가 많은 청하방이었다.


청하방을 다 거닐고 나서, 거리의 끝에서 내가 지나온 거리를 뒤돌아 사진을 찍어서 추억을 남겼다.
저 많은 인파들 사이를 천천히 지나오느라 조금 지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천천히 거리를 걸으면서 오래 전 중국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한편으로 사람이 조금만 적었더도 조금 더 감정을 이입해서 이곳을 느껴봤을텐데,
그리고 시간이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며 아쉬워 했다.

청하방 골목을 빠져나와 큰 길가에서 다시 디디(Didi)를 불렀다.
이제 호텔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고 공항으로 가야 했다.
주말이라 번화가인 청하방 앞에서 디디를 잡는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위치를 조금 옮겨, 번화가를 벗어난 곳에서 디디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1시간 여를 달려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도심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촉박한 시간에도 공항이 멀지 않다는 것이 조금 안도가 되었다.
하룻밤 묵어가면 딱 좋을련만,
짐을 싸서 바로 호텔을 체크아웃 해야 했다.
이제 짐을 싸서 본격적인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유럽으로, 이탈리아 로마로 날아가야 했다.
2023.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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