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10)] 마닐라 코리아타운, 그리고 마닐라의 저녁

마닐라, 마닐라 코리아타운

[필리핀(10)] 마닐라 코리아타운, 그리고 마닐라의 저녁

국외여행/필리핀 Philippines


마닐라 SM몰에 캐리어를 맡겨 두고 그랩을 이용해 코리아타운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마닐라에서 마지막 일정을 이곳, 코리아타운에서 마무리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코리아타운에 도착해서는 근처 편의점에 들러 간단히 마실 음료를 하나 샀다.
밀크티라고 해서 샀는데 달면서도 쟈스민 향이 나는 밀크티여서 걸으면서 적당히 마시기 좋은 음료였다.

코리아타운에 도착했지만 딱히 일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이렇게 일정 없이 여행을 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번 마닐라 여행은 어찌 보면 자유로웠고, 또 어찌 보면
정말 정말 여행자에게는 심심한, 진짜 딱히 할게 없는 마닐라 여행이기도 했다.
클락으로 골프투어나 근교 세부로 다이빙투어를 간다면 모를까, 마닐라는 관광 보다는 필리핀의 수도의 역할에만 충실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마닐라를 여행하면서 오히려 심적으로는 훨씬 여유로움이 있었다.
항상 여행을 하다 보면 다음 일정에, 관광지 입장 시간에, 다음 목적지로의 이동에 압박이 은근 있었는데, 이번 마닐라 여행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느긋한 마음이 생기니 마닐라의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오면서 마닐라의 또다른 매력이 보이기도 했다.

한 낮의 마닐라는 걷기에는 습하고 무더웠지만,
그래도 한 손에 밀크티를 들고 천천히 마닐라 시내를 걸으며 오히려 날 것의 마닐라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내숭 없이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는 마닐라는 어쩌면 조금은 혼란스러웠지만 나름의 규칙이 공존하는 모습이었다.
길거리 리어카 과일장수가 그래서 더 정겹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필리핀의 명물, 지프니(Jeepney)
2차 세계대전 이후 필리핀을 차지한 미군이 남기고 간 군용트럭(지프)을 개조해 대중교통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했다.
이제는 필리핀 대중교통 시스템에서 빠질 수 없는 지프니도 거리를 걸으며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필리핀에서는 지프니 외관을 창의적으로 꾸미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스페어 타이어가 운전석 옆에 뜬금 없이 자리를 잡은 것도, 의미를 알 수 없는 영문과 숫자들이 즐비한 것도 그런 문화를 보여즈는 듯했다.

나와 내 유일한 일행이었던 선배는 그냥 목적지 없이, 그리고 느릿하게 마닐라 거리를 걸어보기로 했었기 때문에 이동하는 동안 지프니를 이용하지는 않았다.
우렁찬 엔진음을 내며 거리를 누비는 지프니의 모습에서 아직도 오래 전 전장을 누비며 병력과 물자를 실어 나르던 군용트럭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닐라의 코리아타운은 낮과 밤의 분위가 너무도 극과 극을 이룰만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사실 코리아타운에는 KTV라고 하는 유흥주점과 노래방이 가득 들어 차 있는, 마닐라에서도 소문난 유흥가이다.
하지만 낮에 이렇게 거리를 거니니, 유명한 유흥가라고 얘기하지 않으면 전혀 눈치채지 못 할 만큼 차분하고 모범적인 거리였다.

조명이 꺼진 KTV는 간판이 없었다면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잠잠했다.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한글 간판만이 이곳이 코리아타운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했다.
코리아타운이라고 해서 한국사람들이 대낮부터 찾아오는 그런 여행지는 또 아니었기에, 거리를 걷는 우리 외에는 한국인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코리아타운의 궁(宮) 마사지가 유명한지, 가게 앞에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실어 온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막 마사지를 받으러 들어간 모양이었다.
버스 기사만이 마사지샵 주변을 서성이며 버스를 지키고 서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의 단체 마사지샵 방문을 목격한 것 때문인지,
내친김에 나와 선배도 마사지를 받자는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근처 예약이 가능한 마사지 샵을 찾았는데
다행이 휴하우스 마사지(Hue Massage)에서 당장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급하게 방문 한 마사지 샵 1층에서 유명인들의 방문 인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닐라를 방문했던 여러 유명인들이 한 번씩을 들러 마사지를 받았던 곳이었다.
그래서 급하게 찾은 마사지 샵이었지만 어찌됐건 잘 찾아왔다고, 안심을 하게 만들었다.

이곳에 내가 좋아하는 롯데 자이언츠의 송승준 선수의 친필 싸인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2009년도에 방문을 했었던 것 같았다.

샵은 깔끔했고, 직원분들은 모두 친절했다.
억지 웃음이 아니라 배려가 묻어 나는 친절과 웃음이었다.
마사지는 시원했고 후련했다.
구글 후기에 부정적인 후기도 몇 개 있어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나를 담당해주셨던 마사지사 분들은 모두 친절했고 서비스도 만족스러웠다.

한 가지 불만족스러웠던 점은, 팁 봉투를 따로 내밀며 팁을 담아 달라고 무언의 압박을 받게 했다는 점이었다.

어련히, 적당히 잘 챙겨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한국사람들이 팁 문화가 없다 보니 이렇게 요구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마사지가 만족스러워, 마사지를 다 받고 나오면서 적당히 팁을 남겨 두고 왔다.

마사지를 받고 나오니 한바탕 큰 비가 내렸다 그쳤는지 도로에는 흥건히 물이 고여 있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마닐라는 습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아 거리를 걸으며 여행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히려 더위가 잠시 사라져서 좋았다.
마사지를 받고 나오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휴 마사지샵 앞으로 여러 한국식당과 술집이 모여 있어서 정겨웠다.

다시 코리아타운을 걷다 로빈슨 플레이스(Robinsons Place Manila) 몰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여행의 여운을 더듬으며 잠시 쉬었다.
필리핀 물가에 비하면 스타벅스의 커피 값이 비싼 편이었지만 빈자리가 없을 만큼 스타벅스 안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번에는 다니엘(Daniel)이라는 이름으로 커피를 주문해 봤다.
여유가 있으니, 잠시 시간을 내어 마시는 시원한 커피 한모금 맛이 참 여유로웠다.

커피를 마시며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많은 대화를 나누다가, 저녁 7시가 넘어 근처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멀리 가지 않고 몰 안에 있는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맛이 나쁘지 않았다.
식당 안에 사람들이 많아서 맛집인 것 같아 저절로 발길이 이끄는대로 찾아 간 식당이었는데 역시나 주문한 모든 음식이 전부 입에 잘 맞아서 기분까지 좋아졌다.

해외여행을 가서 여행을 마무리 할 때 먹는 마지막 식사에서는 늘 서글픈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마닐라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도 다시 그런 서글픈 마음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는데
그래도 맛있는 저녁을 먹게 되어 아쉬움을 잠시 달랠 수가 있었다.
정처 없이 떠도는 듯 흘러갔던 마닐라의 마지막 날 여행이었지만 그래서, 또 그런대로 매력이 있는 마닐라 여행이었다.

계산을 할 때 계산표에 있는 금액을 보고 주문한 음식에 비해서 저렴한 가격 때문에 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던 것도
즐겁게 여행을 마무리 할 수 있게 해줬던 것 같다.
2,054페소, 약 5만원 가량하는 가격으로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주문했던 음식 수에 비해서는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맛있는 저녁을 해결했다.

져녁을 먹고 그랩을 이용해 다시 SM몰로 이동했다.
이제 낮에 맡겨 둔 짐을 찾고 마닐라를 떠나야 할 때였다.

월요일 저녁이라서 그런지, 어제 일요일 저녁에 방문했던 것과 비교하면 사람이 월등히 적고 차량도 적었다.
다행히 좀 덜 복잡한 환경에서 SM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행을 마무리 할 때 이 아쉬운 감정,
이 감정을 가지고 여행을 마무리 해야 다시 새로운 여행지로 여행을 떠날 동기가 부여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으로 SM몰 안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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